옛날 이발소 > 노변정담

본문 바로가기


회원로그인

노변정담

옛날 이발소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상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4-13 07:58 조회6,523회 댓글5건

본문

옛날 소련연방공화국의 하나였다가 독립한 아르메니아 사람과 회사 업무로

점심을 했는데, 우리가 일본을 미워하듯이 아르메니아 서쪽에 위치한 터키가

150만명 이상의 아르메니아인들을 살해한 대학살 사건으로 인해 엄청나게

터키를 싫어한다고 했습니다.

러시아.미국.프랑스.이란등 해외에서 살고 있는 디아스포라 아르메니아인이

수백만명 이라 합니다.

손님의 부친이 아르메니아에서 이발소를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옛날 이발소와 어떤 분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클리퍼 (바리깡) 머리를 밀고, 삐거덕거리는 둥근 의자에 앉아 목에 작은

수건을 두르고 타일을 바른 싱크대에 고개를 숙이면 이발사 아저씨가

물뿌리개로 머리를 적시고 감겨주었습니다.

얼굴에 털이 조금씩 날때 거품솔을 턱에 슥슥 바르고 날카로운 면도칼로

사각사각 면도를 해주었습니다.

수영복을 입은 영화배우들이 등장하는 그당시에는 야시시한 달력도 벽에

걸리기 시작했고요.

 

몇년전 호텔에서 사우나를 폐쇄하기 출장때 마다 사우나의 이발소를

이용했는데,  멋있는 탈렌트 처럼 미남이었던 이용원 주인은 나보다 나이가

2 어렸다고 했고, 전라남도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즉시 서울에 와서 이발소에서 심부름을 하며 기술을 익히고 열심히 일하여

결혼하고 작은 아파트도 마련했으며 대학 4학년, 대학 2학년의 딸이 있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1960년대 초반 대부분 국민이 어렵게 살았고, 부모에게 입이라도 하나 줄여

주기 위해 남자아이들은 양복점 혹은 이용원 에서 기술을 배웠고 여자아이들은 여유있는 집에 가서 일을 도와 주는 것이 대세 였다며 안정적인

삶에 만족한다고 이야기 했던 기억이 납니다.

50.60.70 시절을 생각하면 엄청나게 살고있는 것이 틀림없지요.

오래전의 일들이 생각나서 몇자 적었고, 신문에서 읽은 재미난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끝을 맺을께요.

 

어느 저승사자가 사람을 찾아와서 오늘은 자네가 이세상을 떠날

이라고 통보하자, 자기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우겨도 통하지 않자

한가지 꾀를 냈습니다.

저녁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며 음식을 만들어 수면제를 섞어서 먹인

저승사자가 깊은 잠에 빠진 사이 죽음명단을 고쳐 아래로 이름을 옮겼는데

깨어난 저승사자가 너무 맛있는 음식을 대접받았다며 고마움의 표시로

죽음명단의 아래부터 시작하겠다고 합니다

 

친구분들은 무엇을 느껴셨는지요?

발버둥쳐도 죽음은 피할 없다는 내용입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의 마음을 내려놓는 연습을 매일하며,  우리에게 닥칠

죽음을 회피대상으로 삼지 말고,  현재 자신의  상태에 만족하며  사는 것이

최상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때가 오면 몸을 버리고 훌쩍 떠나면 됩니다.

 

건강하고 재미나게 사세요.

 

 

 

 

 

댓글목록

이원표님의 댓글

이원표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상철아  밸일엄제?
여기도 벌써 봄이오네
낼부터 여의도 벗꽂축제가 열린다네
젤먼져 피는 KBS앞도 몽오리만 있네

그래도 봄은오는지 한낮은 덥다
그곳도 봄은 오겠지
항상 건강하시게

김상철님의 댓글

김상철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원표.용규.동근 친구들아,
봄의 전령사인 꽃 소식으로 완연한 봄기운을
느끼고 즐기고 있겠네.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 같고
점점 나도 나이가 들어 뒤돌아 보는 회수가
많아서 옛날 생각하며 글 쓰게 되네.
덕분에 온라인에서 친구들 만나게 되어 반갑다.
재미난 주말 보내고 건강하기를.


copyright © 2017 http://1438.ipdisk.co.kr All rights reserved.
모바일 버전으로 보기